원전 공론화, 찬반 숫자보다 중요한 것
기후 에너지 환경부가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준비하면서 원전의 역할에 대한 약 3개월 간의 공론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공론화 위원회 출범 배경에는 원전에 대한 찬성 여론이 우세하다는 점이 있지만, 정부는 이를 통해 더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방침이다.
왜 지금 공론화인가
최근 AI와 데이터 센터, 전기차, 반도체 산업으로 인해 앞으로 전력 사용량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런 전력 수요 증가와 탄소 중립 목표를 함께 고려해 원전의 역할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지난 6월 만 18세 이상 2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향후 전력 수요 증가에 대비해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는 응답이 82.9%로 나타났다.
다만 하나의 여론조사 결과가 모든 국민의 의견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질문 방식과 조사 대상, 조사 방법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같은 원전 찬성이라도 전기 요금을 걱정해서 찬성하는 사람,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탄소 배출 감축을 이유로 드는 사람의 근거는 서로 다를 수 있다. 반대하는 쪽 역시 안전성, 방사성 폐기물, 비용 등 각기 다른 이유를 중요하게 여길 수 있다. 숫자만큼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가 중요한 이유다.
공론화 위원회는 어떻게 운영되나
정부 발표에 따르면 공론화 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해 11명 이내로 구성되며, 시민 참여단 숙의토론과 전문가 공개 토론회, 온라인 국민 의견 수렴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원전 전문가는 별도의 전문 위원회를 통해 정보를 제공하고, 공론화 위원회가 의견을 정리해 정부에 권고하는 방식이다.
이런 구조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단순한 여론조사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의견을 형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공론화'라는 이름 자체가 공정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시민 참여단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어떤 자료를 제공하는지, 찬성과 반대 측의 논거를 어떤 비중으로 소개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공론화의 질문 범위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이번 공론화에서 주의해서 볼 부분은 질문의 범위다. 정부는 단순히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찬반을 묻기보다, 미래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여러 대안 중 원전의 역할을 종합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설명상 '원전을 지을지 말지'나 '몇 기를 지을지'를 공론화 위원회가 직접 결정하는 방식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차이를 국민에게도 명확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원전 추가 건설 공론화'라는 표현만 보면 원전을 더 지을 것 인지를 찬반 투표로 결정하는 것처럼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비교해야 할 정보는 무엇인가
원전 논의가 정치적인 찬반 대결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쉽다. 결국 확인이 필요한 것은 훨씬 구체적인 내용들이다.
- 2040년까지 전기가 얼마나 더 필요한지
- 원전을 추가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그 전력을 채울 수 있는지
- 추가한다면 건설 기간과 비용은 어느 정도인지
- 재생 에너지를 확대할 경우 송전망과 ESS는 얼마나 필요한지
이런 내용들이 같은 기준으로 비교돼야 국민이 판단할 수 있다. 안전성과 사용 후 핵연료 문제 역시 빠져서는 안 되며, 반대로 원전의 안정적인 발전량이나 발전 과정의 탄소 배출 측면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어느 한쪽에 유리한 자료만 제시된다면 숙의라기보다 설득에 가까워질 수 있다.
성패는 결론이 아니라 과정에서 판단해야
에너지 문제는 오늘 결정해서 내년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 수십 년 뒤까지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그래서 이번 공론화의 성패를 '원전을 더 짓기로 했느냐, 짓지 않기로 했느냐'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서로 다른 선택의 비용과 위험, 장점을 국민이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의견을 낼 수 있었는지, 그리고 정부가 그 결과를 실제 정책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 했는지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공론화 위원회의 권고는 정부가 전력 수급과 전력 계통 등에 대한 전문적 검토와 종합해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하게 된다. 공론화가 끝난 뒤 정부가 어떤 의견을 받아들이고 어떤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그 이유까지 투명하게 설명하는 과정이 앞으로 이 공론화의 실질적인 의미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